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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옥 화가 - 평론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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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임옥상.jpg

 

민형!

양옥형이 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답니다. 오년만 이던가요? 축하할 일입니다.
민형이나 나나 양옥형의 문하생이지요. 짧았지만 한때 온긋산방에서 수묵화를 배웠으니까요.
양옥형을 벌써 삼십여년 알고 지내온 터였지만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그가 수묵화의 일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지요. 그의 해박한 화론도 화론이지만 사군자 솜씨는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필선은 힘에 넘치고 화면은 일순에 야일한 기운으로 가득차곤 했지요. 우리에게 한문공부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대각선의 시선으로 우리를 치켜 볼 때면 안광이 번뜩이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첫 개인전에서 그가 보여준 그림들은 나에겐 의외였습니다. 그의 특징인 수묵화 중심의 작품들을 기대했는데 막상 출품작들은 수묵화라기 보다는 진채화에 가까운 것들이었습니다. 양옥형은 이것들을 수묵진채화로서 수묵화와 진채화의 크로스오버라고 했습니다. 수묵화와 진채화의 행복한 만남이라고나 할까요. 색을 단순히 수묵의 필선을 해치지 않는 장식정도로 취급하는 수묵담채화와, 선을 사물의 윤곽을 구분하기 위해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진채화나 모두 무엇인가를 결여한 것이 있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이 모두를 상호 보완한 것이 수묵진채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민형도 알다시피 먹선 위에 진채가 덮혀져 선이 상당부분 색 밑으로 깔렸지요. 그러다 보니까 먹선의 탄력은 느슨해졌고 색이 전면으로 튀어나오게 되고 튀어나온 색을 가라앉힐 필요가 생기게 되었지요. 양옥형의 그림에서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배경(여백과는 다른)이 강화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의 이런 의견을 들으면서도 형은 진채화에 대한 강한 집념을 토로했지요. 그는 ‘우리는 일제식민 통치시대를 거치면서 채색화의 전통을 잃었다. 그 결과 일본화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 화단 전체가 채색화 자체를 거부하게 되었다. 선비들의 여가로 즐겼던 수묵화가 한국화의 중심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민중들이 즐겼던 민화는 거의 모두가 채색화-진채화였다. 일본풍과 우리의 전통은 엄밀하게 구분되었어야 했다. 하루바삐 우리 전통색채의 표준을 만들고 그 재료학을 정립시키고 이를 토대로 미술교육을 바로 세워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민형! 잠깐 여기서 이번 전시회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양옥형의 전력을 살펴봅시다. 형은 미술계에서는 매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존재지요. 화가들이 대부분 미술대학 출신인데 비하여 양옥형은 사학과를 다녔고 하지만 사학과는 거리가 먼 미술책방, 화랑, 필방등의 사업-당신말로는 장사를 인사동에서 십여년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다가 사십나이에 뒤늦게 그림을 그리겠다고 사업을 팽개치고 들어 앉았지요, 이때가 1984년경이랍니다.


인사동 십년은 양옥형 자신이 원래 마당발이었지만 다양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고미술 관계자, 화랑주인, 평론가, 화가는 물론 박물관 관계자, 금석가등 실로 많은 사람들과 교류했지요, 그 중에서도 최순우 전국립박물관장, 한학자 임창순 선생님과의 만남은 각별한 의미가 있지요. (이번에 이 두 분의 도자 초상이 출품됩니다.) 촤순우선생께는 한국미술의 정신을, 임창순선생으로부터는 금석학의 필요성을 배웠던 것이지요. 양옥형의 화가로서의 전업은 이 기간에 충분히 준비되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 켠에 비켜서서 바라보이는 미술판은 정말 가관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어려서부터 그림에 탁월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때는 그림을 그릴 결심도 했던 그였기에 스스로 칼을 뽑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박정희 시대 70년대 중반부터 동양화 시장이 과열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지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그림값이 비싼 것은 화랑, 평론가, 화가, 소장가의 4자 담합의 결과입니다. 그림값이 비싸야 서로 나누어 먹을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지요. 결국 소장가도 그림값이 비싸야 다시 비싸게 되팔 수 있기 때문에 모두 함께 놀아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결국 일반대중만 소외되고 말았지요.” 그래서 형은 그림값은 싸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래야 화가도 화랑도 일반대중도 모두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번 전시작품을 형은 싸게 팔겠다는 것입니다. 나도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민형! 양옥형의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96년 전시와는 달리 수묵담채가 중심에 서고 새로운 도자기그림, 현판그림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모두 민화정신에 바탕을 둔 생활화들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순수회화 즉 감상이 목적인 그림보다는 한발 더 나아가 사용-활용 할 수 있는 그림을 양옥형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생활화는 그 이유만으로도 민중적일 수 있고 작품가격을 끌어내릴 수 있지요. 양옥형이 틈만나면 부채그림 부적등을 만들어서 나누어 주는 것은 전시장 중심으로 굳어버린 미술제도권에 대한 도전이며 자신 나름의 생활 속의 화가-미술을 실천하는 행위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생활화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의 그림은 쉽고 천진하고 친근합니다. 주제 자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매우 우의적이며 해학적이기도 하지요. 양옥형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당나귀, 개구리, 닭, 금붕어 등은 우리생활 속에 공기처럼 녹아있는 것이지요. 어찌보면 도자기화, 현판화등도 바로 이런 생활 속의 미술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민형! 나에게도 한 가지 불만은 있습니다. 실용화를 꿈꾼다는 것도 좋지만 모두 중소형 크기의 작품들이다 보니까 작품이 가지는 모뉴멘털리티 같은 것들이 그의 필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발휘되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고정관념인지도 모르겠지만 작품은 그 작품 자체가 크기를 타고난다고 보는데 자신의 철학을 위해 작품의 크기를 억지로 일정하게 묶어놓은 듯한 느낌을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작품의 크기가 더 커지면 지금까지 잘 보이지 않았던 문제들도 함께 드러나면서 보다 본격적인 문제로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사족이지만 작품의 크기로 작품의 성격을 규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형은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양옥형의 그림의 화두는 아마 전통, 환경-생태, 실용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통과 실용의 얘기는 앞서 했고, 환경 문제는 본인 스스로 오년여 환경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만큼 그림도 그만큼 환경과 생태에 대한 깊은 천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전북 삼례에서 어린시절을 할아버지의 시조소리에 눈뜨고 퍼득이는 물고기를 잡으면서 지는 해를 지켜보았던 그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모르는 것이 없을 만큼 박물학적인 그이지만 양옥형 스스로 ‘현대 콤플렉스’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지요. 모든 가치관이 붕괴되고 원인도 이유도 없이 떠밀려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서 그는 우리들에게 무엇이 소중하며 되돌아 볼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일 것입니다. 민형도 그렇겠지만 양옥형과 함께 있으면 나는 계속 죽비를 맞는 기분입니다.
“할 일이 너무 많은데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있느냐? 봐라 이것도 문제이고 저것도 문제이며,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 근본도 모르면서 무엇을 한다고 그리 날뛰느냐? 정신차려라!”

임옥상(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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