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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양옥 화가 - 평론모음

[ 2015년 4월 27일 ] 

전통 채색화의 뿌리를 탐색한 화가 - 유양옥

 

김영복/ (주)옥션단 대표

손장섭/화가

정혜란/화가

주재환/ 화가

사회 윤철규/ 한국미술정보개발원 대표

 

 

> 윤철규

안녕하세요. 여기 계신 여러 선생님들의 기억 속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게실 유양옥 선생님이 돌아가신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저도 유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많습니다만 매우 특이하고 독특한 한 평생을 살았던 분이 아니신가 생각됩니다. 본인의 삶도 그렇지만 그분이 살았던 시대는 돌이켜보면 곡절이 많았고 또 지금 보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같은 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유 선생님은 크게 봐서 박물관에 한 발을 담그고, 다른 한 발은 인사동에 두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어느 시점부터는 본인 스스로 화가로서 새로운 미술을 시도하셨습니다. 그가 사셨던 시대도 그렇거니와 활동 범위라는 점에서도 우리 현대 미술의 산 증인 중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유 선생님의 작품집을 만들면서 생전에 그분과 각별하게 지내신 여러 선생님들을 모시고 돌아가신 분과 겪었던 그 시절의 재미있었고 유쾌했던 추억은 물론 그분이 평생 그리 보고자 했던 미술 세계에 대해 애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먼저 유양옥 선생을 처음 만나셨을 때부터 말씀을 해주시면 어떨까요.

 

> 주재환

70년대 중반인가요, 휘문 고등학교 출신의 내 선배이신 심우성 선생이 전통인형극연구소를 하고 계셨어요. 그때 거기서 내가 자료 찾는 등의 일을 도와드리고 있었는데 귀한 국악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 나더러 찾아가서 자료를 좀 가져오라는 거예요. 그때가 한 여름이었는데 그래서 경기도 광주의 한 농장 같은 데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심 선생이 귀중한 국악 음반을 소장하고 있다던 사람이 바로 유양옥 씨였습니다. 그 때 처음 만난 것이지요. 나이는 나보다 좀 밑인데 사귐성이 좋아 금방 친해졌지요.

 

> 손장섭

내가 유양옥씨를 처음 만난 것은 70년대 초라고 생각되는데 내가 동화출판공사에서 유명한『한국미술전집』 만들고 있을 때였어요. 이경성씨가 책임 편집자로 이름을 걸어놓고 이구열씨가 편집을 하고 내가 거기서 이런저런 실무를 하고 있었던 때였거든요.

그 무렵에 청년 한 사람이 대뜸 찾아와서 자기가 이 책을 팔겠다고 하는 거예요. 유양옥씨가 붙임성 좋고 말을 잘하잖아요. 그래서 쉽게 친해졌지. 나이는 내가 위이지만 그 사람이 그런 거 가리지 않잖아요.

 

> 주재환

우리는 족보나 학교 같은 거 안 물어보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유양옥씨가 학교를 어디 나오고 나이가 얼마냐고 하는 말들은 서로 안해. 지금도 몰라. 손장섭 씨는 술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사는 동네도 엇비슷해 나하고 같이 셋이 어울려서 대폿집에 많이 다녔어요.

 

> 김영복

제가 기억하기에 유 선생은 아버님이 자산가셨고 큰아들에게 꽤 후했던 것 같았습니다. 70년대 중반에 제가 군대엘 가기 전에 통문관에 있을 때 유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 유 선생님은 서점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사동에 서점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꽤 여유가 있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때 책방 이름이 시산방(詩山房)이었습니다.  

 

> 정혜란

저도 유 선생님의 인연을 말씀드려야겠네요. 유양옥 선생님과 1990년 초부터 가깝게 지냈습니다.

지금 찻집이 되어 있는 인사동 한옥 한 채를 선생님이 개인 스튜디오처럼 쓰고 있었고 거기서 온긋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온긋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유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그보다 조금 전으로 제가 민화를 배우고 싶어 문화재보존회에서 열고 있던 민화반에 그림을 배우러 갔을 때였어요. 그곳에서 유 선생님이 민화를 가르치고 계셨죠. 경복궁 안에 있던 전통공예관이었는데 그곳의 임영주 관장님과 친했던 연유로 그곳에서 민화 강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온긋회는 그 이후의 일이지요. 

 

> 윤철규

제 경우가 가장 늦게 유 선생님과 만난 셈이네요. 저는 88년 가을 무렵에 인사동에서 알게 됐습니다. 여기 계시는 김영복 형이 제가 인사동에 나가서 처음 알게 된 ‘인사동 사람들’(웃음) 제1호이신데 김 형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유 선생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수도 약국 근처 중국집 이층인데 술자리에서 만난 것이지요. 그때 아마 온긋회를 하실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에 미술기자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만 유 선생님을 알고 난 뒤로는 취재하면서 틈틈이 뒷얘기 같은 것을 보충해야 할 때 자주 전화 드린 기억이 납니다.

워낙에 다방면으로 아는 것도 많고 인맥도 넓어 그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여기 계신 김 형께서는 고전이나 한국학 관련분야에 정통 하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계실 겁니다만 유 선생님도 거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화가나 미술계 그리고 박물관 얘기에 정통해 이쪽 얘기는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였습니다.

 

> 정혜란

유 선생님의 해박한 점은 알아주어야 하는데 중고등학교 다닐 때 가정교사가 있었을 정도로 부유했다고 들었어요. 이때 만난 가정교사가 좀 특이했던 분 같아요. 문학에서 클래식까지 문화 방면에 관심이 높았던 청년으로 그 분에게서 당시에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다고 합니다. 유 선생님의 다방면에 걸친 관심과 해박한 교양은 아마도 이분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고 생각됩니다.

 

> 김영복

제가 만났을 때 유 선생의 시산방 위치는 지금의 수도약국 바로 아래쯤인데 그곳은 책방이면서 화랑이기도 하고 박물관 관계자들의 사랑방이기도 했어요. 구본웅 작품이었던 것도 그곳에서 봤던 기억이 있고 또 작은 전시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유 선생이 그림도 아마 그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생각납니다. 제가 그곳에 들르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있으라 하고 초상화를 그렸지요. 수십장씩 그렸는데 그때는 수염도 기르고 머리도 길렀을 때이기도 해서 당시 제 마음에는 썩 들지 않는 초상화였어요(웃음). 그때 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도 나중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 그려준 초상화가 어딘가 있을 텐데 찾을 수가 없네요.

 

> 정혜란

화가 되기 이전에 초상화를 많이 그려주셨다고 말씀을 하시니 생각나는데, 유 선생님의 특징이 그랬어요. 제아무리 유명한 화가라도 보통은 다른 사람 앞에서 종이 꺼내들고 그림 그리기 쉽지 않은데 이런데 전혀 개의치 않으셨어요. 현장에서 참 잘 그리셨어요. 강릉 단오제도 같이 가보고 벽화 그릴 때도 옆에 있었는데 그때마다 누가 보든 말든 그림을 그렸어요. 또 작업량도 대단하셨구요.

온긋회에 다닐 때에는 사군자를 배우면서 채본을 받았는데 제가 미대를 다니면서 받았던 채본 보다 유양옥 선생님 것이 훨씬 뛰어난 경우가 많았습니다. 온긋회는 미술동호회이기도 하면서 화가와 일반인에게 수묵화나 민화 등을 가르치는 곳이었어요. 특별히 외부 활동은 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서 사군자 채본을 받고 그림 그린 것을 서로 보여주면서 화론 공부하고 그랬던 모임이었어요.  

 

> 윤철규

온긋이라는 것은 ‘일획’이라는 뜻이죠. 석도화론에 보면 그 얘기가 나오는데 당시 석도화론이 막 번역되어 나온 때였습니다. 정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만 유 선생님의 특징 중 하나가 적극성 아닌가요.  

 

> 김영복

제가 군대를 갔다 와서 인사동에서 다시 유선생을 만났을 무렵에는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때였습니다. 그림은 사람을 많이 만났던 데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여기 계시는 주 선생님이나 손 선생님도 그렇지만 현실과 발언 그룹과도 친했고 인사동에서는 두루두루 가깝게 지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마당발이란 표현과는 좀 다른데 아무튼 그분야의 전문가들하고 아주 친했습니다.

낙원표구사나 학고재 등은 물론 유홍준, 임형택, 백순기 씨와도 교류가 있었고 공예 하는 아원공방 대표와도 친했지요. 청명 임창순 선생님, 서예가 여초 김응현 선생님 등도 알고 지냈고 유도회의 홍찬유 선생과 한학자 조남권 선생에게는 화론 공부도 하기도 했습니다.  

워낙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그런 교류가 유 선생에게 그림이 무엇이라는 것에 대해 알려준 바가 많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림 그리는 후배들 중에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양화를 다시 배우고 하는 화가들을 특히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 정혜란

저는 서양미술을 전공했지만 한국미술에 관심이 많아 1~2년 정도 배웠던 것 같습니다. 임옥상, 민정기 선생 등도 그때 저와 함께 배웠어요. 사군자, 화훼 등의 실기도 배우고 이론 공부도 같이 했지요.  

 

> 주재환

현실과 발언 그룹의 몇몇과 자주 어울린 것은 사실이예요. 인사동에서 온긋회를 비롯해서 여러 모임을 가졌고, 인사동의 술집 같은 데서 우연히 많이 만나곤 했죠. 개인 아카데미를 비교적 일찍 시작한 것이 사람들을 많이 만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워낙 본인이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술도 좋아했죠. 술이 좀 들어가면 러시아 민요를 목청껏 부르고 음악 얘기, 그림 얘기를 끝도 없이 하는 그런 매력이 있던 양반이지요.

 

> 윤철규

술에 취해 주먹으로 장단을 맞추면서 노래하시던 모습이 선하네요. 대화는 영화에서 음악, 소설, 화집 등등 정말 주제가 끝이 없었어요.

 

> 김영복

저는 영화나 음악은 잘 모르겠고 책을 많이 모은 것은 다소 압니다. 어떤 수필에 호기심 왕성한 아이가 나오는 것이 있는데 마치 그 아이처럼 모든 것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어요. 판본의 중요성에 대해 일찍 이해하고 그것을 사 모았습니다. 『개자원화전』을 아주 좋은 것으로 한 권 가지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꽤 비싸게 주고 샀을 텐데. 또 저하고 있을 때 책 이야기로『지나남화대성(支那南畵大成)』얘기를 많이 했는데 중국의 남종화 대표화가의 그림을 모아 놓은 이 책은 일제 때 나온 것이라 굉장히 귀해 그 때 돈으로 백여 만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김달진미술연구소에 기증됐다고 하는데 이 책을 포함해 공부하는 사람들 중에 유 선생이 소장하던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잘 활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혜란

사람을 많이 사귄 것도 그렇고 책 모은 것도 다방면으로 호기심이 많아서 그럴 거예요. 그런 연장선인데 심지어 화훼에도 관심이 많아 아는 것도 무척 많으셨어요. 책 이외에 수집에도 일가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골동도 모았다고 하는데 하도 사들여 사모님에게 눈치가 보이니까 집에 들어갈 때 신문지에 싸서 대문 앞에 놓아두었다가 나중에 살짝 다시 나와 가지고 들어간다고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가깝게 지내신 김인회 선생님은 민화의 연장으로 무속까지 관심이 뻗어서 아시게 된 분인데 이분 덕분에 좋은 앰프를 구하셨대요. 서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알게 돼 그분이 좋은 앰프 얘기를 추천하셨는데 말을 못 꺼내다가 사모님한테 조심스레 얘기를 했더니 ‘이왕 사는 거 좋은 것을 사라’고 하셔서 아주 기본 좋게 물건을 장만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 주재환

유양옥씨는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제가 뭘 아나요’하고 빼다가 얘기가 시작되면 본인이 스스로 도취해 끝없이 얘기를 풀어내지요. 문화 전방위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거예요. 나나 손장섭씨와는 동네도 같고 해서 셋이 자주 어울려 알지만 다른 사람하고 어울린 것은 자세히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한번 친해지기 시작하면 아침 일찍 전화를 걸어서 장시간 통화(?)를 하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아주 돈독한 것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이런 전화를 거의 매일 합니다.

 

> 손장섭

유양옥 씨는 술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요. 술 마시면 얘기 좋아하고 노래 잘 부르고 잘 놀았어요. 그런데 얘기를 좋아하는 것은 술자리만은 아니지. 궁금한 게 있으며 아무 때고 전화를 해.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해대기도 했어요. 거짓말이 아니라 전화를 끊고 나서 돌아서기도 전에 또 할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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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철규

술은 저도 여러 번 같이 했습니다만 술보다는 그분은 미식 쪽이 아닌가 합니다. 맛있는 집을 잘 알고 있었는데 보통 사람은 여기까지라면 유 선생은 거기서 한발 더 나갑니다. 어느 음식점엘 가든 마음에 드는 경우에는 주인과 반드시 얘기를 해서 그 사람의 정보를 알아내어야 직성이 풀리시죠.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림까지 갖다 주는 것 같더라구요.  

 

> 주재환

헌법재판소 근처에 있는 창덕호프가 단골이었는데 유양옥 씨 그림이 거기에 하나 걸려 있어요.

   

> 손장섭

그가 다닌 맛 집에는 거의 가 그 양반 그림이 걸려 있다고 봐야 되요. 헌법재판소앞의 생맥주집 창원 말고도 은평초등학교 후문에 있는 냉면집도 그렇고 청운초등학교 골목 입구에 있는 중국집에는 유양옥씨 그림이 걸려 있지.

 

> 김영복

냉면 얘기가 나와서 인데요, 저도 냉면을 몹시 좋아하는데 유 선생은 강행보, 김호근씨 등과 함께 냉면 먹는 모임이 만들었을 정도예요. 냉면을 먹을 때 자르면 안 되고 똥구멍까지 냉면 사리가 연결이 되어야 된다는 게 유양옥 씨 지론이었습니다.(하하)

 

> 주재환

나도 손장섭 씨와 셋이서 장충동 평양냉면을 여러 번 갔는데 그 사람 좋아하던 냉면 식당으로 남대문시장 안에 있는 부원식당이 유명했지요. 또 사직동 옥인시장 안에 있는 할머니 간장떡볶이도 잘 아는데 그 양반은 이렇게 털털하고 맛있는 집이 전문이야.

 

> 김영복

유 선생 특징은 요즘 말로 ‘필이 꽂히면’ 계속 가서 단골을 만든다는 겁니다.

 

> 주재환

전화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고도원의 아침편지라는 거 있잖아. 나는 받아보지는 못해 무슨 내용이지 알지 못하는데 만일 미술계 사람으로서 ‘유양옥의 아침 전화’를 받지 못했다면 그건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하하하.

 

> 김영복

저는 8시나 되어야 일어나는 사람인데 새벽같이 전화를 해서 말년에는 많이 힘들었죠(웃음).

 

> 손장섭

나한테 특히 전화를 많이 한 것은 그림을 막 시작할 때였어요. 본인이 말한 것처럼 진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데 물어볼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어.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물감 얘기를 많이 물어봤지. 나중에는 진채 말고 아크릴 작업도 얼마 정도 한 것으로 아는데 그때도 지독할 만큼 전화를 해댔지. 전화국에서 분명히 상 줘야 할 사람이야. 세상에 그렇게 열심히 돌려대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  

 

> 주재환

물감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여기 손 선생은 우리나라 화가 중에 물감에 제일 정통할 거예요. 학교 다닐 때 가난해서 물감 사기가 힘들었거든. 그래서 당시에 학생들이 제일 안 쓰는 화이트를 거져 받아다가 자기가 물감을 만들어 썼어. 그런 연구 끝에 화이트의 대가(?)가 됐는데 아마 유양옥 씨의 궁금증이 거기에 꽂혔을 거야.  

 

> 손장섭

양옥씨는 뭐든지 궁금하면 그 자리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성미인데 그런 끈기가 있으니 청와대에 들어간 반차도도 그렸을 거예요. 사실 그런 내용의 그림을 그리려면 상당한 고증을 해야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여러 사람 괴롭히면서 많은 연구를 했을 거야. 선묘로 밑그림을 그려낸다는 게 쉽지 않거든.  

 

> 정혜란

어떤 방면이든 잡히면 무지막지한 연구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공감입니다. 전통공예관에서 민화반을 하셨을 때 제가 여러 번 봤습니다. 연구도 그렇지만 가르칠 때도 철저하게 했어요. 기술적으로 철저했다는 건데 작업시간이 굉장히 길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할 때도 많았고요. 유 선생님은 항상 근원, 뿌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어요.

 

> 김영복

본인이 뒤늦게 그림을 시작했다는 점도 있고 해서 많은 자료나 근거를 확보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면 자신의 특기인 대시를 통해서 처음 보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고 안되면 만나든 의심이 없어질 때까지 파고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로 넘어가는데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만의 지식이 쌓이게 된 것이라고 봅니다. 반차도를 그린 것도 어떤 모델이 있어서가 아니라 본인만의 문제해결 방식에 따라서 옛 것과 가까운 방법을 찾아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주재환

청와대 주문을 받았으니까 말하자면 유양옥씨는 궁중화가야, 궁중화가 1호라고 할 수 있지. 하하하. 청와대 사랑방에 걸려있는 육조그림은 나도 좀 아는데 서울정도 육백주년 행사를 하면서 성완경씨가 프로젝트를 맡아 나도 자문위원을 했거든. 이때 유양옥씨을 소개해서 그가 육조거리 그림을 그렸지.

     

여기 계시는 정혜란 선생도 그렇지만 신경호, 민정기, 임옥상 등과 친해진 이유는 대학교에서는 안 가르치는 것을 유양옥 씨가 공부를 했으니 그들에게 많이 알려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 김영복

임옥상 씨나 민정기 씨의 나중 그림을 보면 유양옥 선생의 영향이 조금 보이기도 합니다. 한지나 전통재료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했을 겁니다. 유양옥 선생님이 재료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인사동의 중국 서점으로 동방서점이 있었습니다. 여기에 종이를 비롯한 중국 재료에 관해 쓴 중국책이 하나 들어왔는데 보고 싶기는 하지만 읽지 못하니까 내게 번역을 부탁하다가 내가 바빠서 다 못해주니까 그 서점에 있던 중국인 여점원에게 번역을 시키기도 했을 정도입니다.  

 

> 정혜란

자료에서 시작된 욕심이 나중에 책, 물감, 먹, 붓, 종이로 이어져 어느 화방에서 좋은 물감이 들어왔다고 하면 과감하게 사들이셨죠. 하도 가게들을 돌아다니까 물감은 어느 가게가 좋고 종이는 어디가 좋으며 할인을 어디서 해주고 하는 것까지 빠꼼이처럼 다 알고 계셨어요.

 

> 윤철규

재료 욕심이라고 할까요, 그런 면을 저도 일본이 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처음 일본에 오셨는데 오자마자 도쿄에서 제일 물감을 많이 파는 곳을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석채, 분채에 아크릴 물감까지 종류별로 사들이는 것을 보고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데 재료가 보통이 아니구나 생각한 적이 있었지요.  

 

> 손장섭

그림을 그리고 나서는 나보고 봐달라고 해서 몇 번씩이나 기자촌으로 불려갔지요. 진채화에 대해서는 한국화가 중에 유양옥씨 만큼 공부한 사람이 없을 겁니다. 물감 욕심이 있어 무진장하게 사놓기도 했어. 진채로 민화를 그리는 것을 유양옥 양식이라고 부를만한데 진가는 그 사람이 서양미술을 안 배웠다는 겁니다. 만일 서양미술의 데생을 배웠다면 그런 그림을 절대로 그릴 수 없거든요. 학교 미술을 배워서는 풀리지 않는 점이 분명히 있어요.  

 

> 김영복

유양옥 선생에게 그림이나 화론에 대한 근본적인 영향을 준 사람은 돌아가신 최순우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박물관 사람들과 늘 사귀면서 영향을 받았는데 최순우 선생을 가장 많이 따르셨고 그로 인해 인맥도 넓혀지면서 이후에 대가들에게 다방면으로 듣고 공부하면서 자신의 영역을 찾아간 것이지요. 유 선생 그림은 매우 독특합니다. 그림을 정통으로 배우면 ‘습’이 생기는데 유 선생 그림은 그렇지 않아 작품이 담백해요.

 

> 윤철규

저는 채색 이야기, 오방색 이야기를 한때 집중적으로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방면에 전혀 문외한이라 대구는커녕 듣기만 했는데 연구가 상당히 깊은 느낌은 있었습니다. 누구의 글에서 색에 대한 이야기를 봤는데 자신이 봤을 때는 미진하다는 둥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색 자체를 어떻게 해석했다는 둥 그런 얘기를 끝도 없이 해주고 했습니다.

 

> 정혜란

전통화 하면 무조건 수묵이나 수채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으로 한정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 주재환

일제 강점기에 일본풍 채색화가 유입되면서 한국 전통화에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해방 이후에 논란이 많았는데 어쨌든 한국 전통화 쪽으로는 수묵만 전해 내려오게 됐습니다. 그 빈 자리가 진채화 부분인데 유양옥씨가 그 자리를 탐색한 것이 됩니다. 여기는 끊겨서 스스로 자료를 구하고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무엇인가 망각된 부분을 되살리느라고 노력했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이제라도 인정을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예술 세계가 도달한 수준에 대한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이 방면에 주목을 한 데에는 선각자적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가 추구했던 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높이 평가해야 해요.

진채를 연구하면서 표현 기법은 민화풍으로 도전해 나간 것이 그의 작품 세계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회화뿐만 아니라 도자기, 벽화, 장식화도 많이 했습니다. 전성우 이사장 소장품인 모란 병풍, 청와대에 들어간 반차도 등 대작들이 있었죠. 진명여고 근처의 작업실에 여러번 찾아갔었는데 개인 작품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조금 다른 얘기지만 부적 같은 것도 많이 그려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 정혜란

진채에 대한 발상은 아마 끝도 없이 넓었던 호기심이 미술 쪽에서 도달한 한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는 그림하고 음식과도 연관을 맺고 싶어 했고 또 그림하고 옛 인사동의 기억과도 맺어보려고 했지요. 민화를 공부하면서, 정색을 하고 그리는 그림과는 다른 세계를 꿈꾸었던 것 같습니다. 정통에서 보면 다분히 방계로 보이겠지만요.

 

> 윤철규

일반적으로 화가가 자장면이나 냉면을 먹는 모습을 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을뿐더러 그런 그림은 실제 거의 없습니다. 이런 그림에 대해 사람들은 편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고상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본인이 화가로서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아 인정받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면서 몹시 분개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림에 대해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고 말이죠. 자신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다는 불만이었습니다. 제 경우 그 단계로 가기 전에 이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얘기하기가 어려웠던 점이 있었고 또 처음에는 화가의 길로 가시리라고는 생각을 안 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제 생각이 짧았던 점이 많습니다.

 

> 김영복

1990년대 이후로는 각자의 일이 바빠서인지 좀 소원했습니다만 그 무렵 본격적으로 그림에 매달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왜 갑자기 그림을 그린다고 할까’하는 생각이 솔직히 들기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자신’의 민화를 그린 사람은 전혀 없었고 과거에 있었던 그림을 베끼기만 뿐이었지요. 지금 당신의 그림을 보니까 재야에 있으면서 새로운 민화를 시도하면서 진채 연구도 활발히 한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이것은 민화의 소재와 내용 그리고 재료 연구에 있어서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역할이라고 할 만합니다. 유 선생이 했던 일 비슷한 것들이 90년대 후반이후 2000년대 들어 막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어요.

 

> 정혜란

중국화론, 미술사, 화상석, 뭔가 자꾸자꾸 근원을 찾아 모티브를 갖고 선생님 그림에 적용을 하셨습니다. 본인이 돌아가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신 듯해요. 마지막에도 분청사기 문양에 몰두 하셨지죠. 분청사기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강경숙 선생께 매일 전화하고 계속 질문하면서 문양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 주재환

궁금한 것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파고 들었던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가 낭만파 세대라고 할 수 있는데, 민중미술 쪽의 김영태, 여운 등이 낭만파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중에서도 독특한 위상을 가진 것이 유양옥 씨이지요.

 

> 정혜란

미술계에 학연, 인맥이 폐쇄적인 편이고 작품을 놓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풍토가 아닌데 유 선생님은 이에 굉장히 비판적이실 때가 많았어요. 일종의 마찰이 생긴 것이죠. 선생님 노릇을 했으면 참 잘했을 거 같아요. 얘기할 게 많아서. 그걸 못해서 전화로 풀으셨나 봅니다.

 

> 김영복

여기 주 선생님도 계시고 아까 임옥상, 민정기 씨 얘기도 나오는데 현실과 발언 그룹과는 코드가 맞는 점이 있었지요. 다른 쪽 사람들은 이 양반 얘기를 들어주지를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전문가를 알아봐서 그 사람에게서 욕 나올 때까지 물어보는 거죠(웃음).

 

> 주재환

초기 약력으로 여초 김응현, 원중식, 이종상 선생 등에게 배웠다고 나오는데 어느 정도 배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화단에는 사실상 서울대니 홍대니 하는 학맥이 있는데 유양옥씨에게는 그런 것이 없고 또 동양화 쪽에는 흔히 스승과 제자로 이뤄진 사승 관계도 많지만 그것도 없이 독자노선으로 가니까 지지해 줄 사람들이 부족했던 거지요. 성격상 홀로 개척해 나가면서 개인 플레이를 한 것이니 제도권에서 인정을 못 받았던 면이 있습니다.

 

> 김영복

그게 더 나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그룹 안으로 들어간다면 아류밖에 안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 주재환

말년에 아산병원에 입원했다가 호전이 되어서 집근처에서 차 한 잔을 했고 이후 일산병원에서 투석을 한다고는 했지만 정상으로 돌아온 줄 알았습니다. 갑자기 가게 될 줄 전혀 몰랐어요. 운명은 재천이라지만 너무 일렀습니다.

 

> 김영복

지금 딱 좋을 때인데 너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화맥 콤플렉스를 다 소화시키고 좋은 것을 할 때였다고 봅니다.

 

> 손장섭

유양옥씨 하면 목소리 큰 게 기억나는데 술집에서 우리 셋이서 둘러앉아 웃기라도 하면 그 양반 ‘핫핫핫’ 하는 소리에 정말 주변 사람들이 모두 돌아보았거든. 뭐든지 신나고 즐거워야 그런 웃음이 나오는 거 아니겠어. 그런 점에서 양옥씨는 자신의 인생을 충분히 살면서 모으고 싶은 것 모으고 사고보고 싶은 것 사고 그리고 싶은 것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간 것 같아요.  

 

> 주재환

나는 유양옥 씨의 웃음 그거는 양산박 두령이 웃어 제키는 두령 웃음소리라고 생각해. 웃음소리는 정말 백만 불짜리인데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어디선가 들리는 거 같네요.하하하(*)

 

> 윤철규

여러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유 선생님께서 생전에 하시고자 했던 일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느낌입니다. 맥이 단절된 채색 전통을 되살려 현대적 조형과 접목을 시켜보고자 한 노력이 그것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유 선생님께서 애쓴 새로운 시도에 대한 평가는 늦었지만 이제부터 제대로 논의가 돼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만에 옛 분을 회상하는 자리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을 해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오늘 말씀해주신 회고담은 유 선생님의 그림 세계를 재평가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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